물듦공동체 윤수정 대표님 인터뷰 ㅣ 그림은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그리는 마음이 더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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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자기 소개와 더불어 물듦공동체에 대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네, 저는 포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물듦공동체 대표 윤수정입니다. 저는 서양화 화가이고요.
저희 물듦공동체는 예술문화 분야에서 종사하고 계시던 선생님들이 모여서 만든 교육 예술문화단체입니다. 저는 서양 화가로 활동을 쭉 하고 있다가, 포천에 아울렛이 굉장히 많거든요. 가구서부터 의류 모든 아울렛 단지가 형성이 되어 있는데, 큰 도로변의 상가들은 활성화가 되어 있지만 그 바로 뒤에 있는 상가들이 좀 어려움을 많이 겪다 보니까상권이 죽어 있는 건물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가게 세가 많이 싸졌어요. 그래서 저처럼 작업실을 구하는 예술가들이 공간도 예쁘고 여기가 또 조용해서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굉장히 환경이 좋으니 많이들 입주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저처럼 개별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예술가 골목이 되고 서로 간에 친목도 쌓이면서 물듦공동체를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서울의 연남동 한 골목을 똑 잘라 붙여넣기 한 것 같은 포천의 물듦길. 포천 소홀읍 인근에 사는 예술가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다. 한지 공예 예술가, 공예 예술가, 조각가, 무용가, 음악가, 화가까지. 활동하는 장르도 다양하다.
-출범은 언제 하시게 된 건가요? '물듦'이라는 네이밍도 굉장히 궁금하고요.
출범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요(웃음). 작년 7월에 처음 시작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물듦이라는 이름은 저희가 이름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이 많았는데, 회의를 거듭하다가 어떤 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너에게 내가 물들고, 나에게 네가 물들고, 좋은 일에 물들고... 이런 말이 오가다 보니까 물들다라는 말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글씨로도 써보니까 '듦'이라는 글자가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물듦공동체로 이름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구성원은 총 5명. 모두 학부모인 여성 예술가들로 구성된 것도 특기할 만 하다. 각자 하는 일에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각자가 대표인데, 그들이 모여 단체를 만들다 보니 개인 화실을 운영하던 윤수정 대표님 첫 번째 주자로 물듦공동체의 대표를 맡게 된 것이라고 한다.
-대표님은 서양 화가이기도 하시잖아요. 처음 그림을 어떤 계기로 접하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커서 미대에 입학해서 화가가 된다는 꿈을 늘 갖고 있었거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술 공부를 하고 미대를 가고 미대를 졸업하고 또 계속 그림을 조금씩 조금씩 계속 이어가면서 계속 지금까지 쭉 이어왔던 것 같아요. 이건 너무 자연스러운 그냥 과정이지 제가 화가가 되기 위해서 심한 역경이나 고난을 겪은 건 아니었어요.
예술가들에게 으레 기대되는 고난의 스토리 없이 애초에 그림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어린 시절을 겪어왔던 윤수정 대표님. 그러다 자생적으로 아르바이트와 돈을 벌어가면서 미대를 졸업했는데 저에게 좋은 기회가 생겨 호주 멜버른에 있는왕립 학교에 교환 학생으로 선발이 되어 유학을 갔던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림을 그릴 땐 아무래도 무조건 그림, 그림, 그림이에요. 미대에 가면 작업실과 미술실에만 미대생들이 몰려 있어요. 작업실에서 계속 그림만 그려요. 근데 호주 멜버른에 갔는데, 거기는 작업실에 사람들이 없어요. 저는 너무 놀랐어요. 자기들 각자의 공간이 정해져 있고, 저는 맨날 시간만 나면 제 공간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데 저 빼고 작업실에 학생들이 없는 거예요.학생들이 작업실이 아니라 도서관에 전부 가 있어요. 그림에 점 하나를 찍더라도 자기가 이 점 하나를 찍는 이유를 레포트로 3장, 4장씩 써오더라고요. 저는 전혀 생각도 못 해봤던 일이에요. 우리나라에선 평가를 할 때 레포트로 평가를 하지 않아요. 그림을 놓고 바로 거기에서 교수님들이 그림을 보고 평가를 하시거든요.물론, 호주에서도 결과물은 중요해요. 작품 디스플레이도 당연히 해놔야 해요. 자기 작품을 어떤 식으로 전시하겠다는 생각까지도 다 평가 대상이기 때문에. 하지만 거기에 전시를 해놓고 내가 왜 이 공간에 이 높이에 이런 바탕과 색깔에 이 그림을 전시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그림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를 레포트로도 제출을 해야 하는 거예요. 단순히 자기 작품만 가지고 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작품을 하기 위해서 어떤 작가의 16세기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받았고, 이 하늘을 그리기 위해서 17세기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작품을 평가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 나라엔 '입시 미술'이라는 게 없어요. 포트폴리오 제출을 통해 다면적으로 평가해요.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걸 그리는 생각과 마음이 중요한 거구나, 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저는 그때까지 기술적인 그림만을 그렸구나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되었어요. 사상이 중요한 건데. 그리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고 생각이 중요한 건데, 나는 너무 기술적인 것만 연마를 했단 걸 알게 됐어요.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걸 그리는 생각과 마음이 중요하다'라는 말에서 윤수정 대표님의 화가로서의 면모가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들 미술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는 윤수정 대표님의 교육관에도 맞닿아 있을 것만 같았다.
제가 유학을 끝내고 돌아와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병행을 했거든요. 미술학원에서도 좀 있었고, 지금도 아이들 가르치는 거 재미있어 하기 때문에 물듦공동체를 통해 문화예술 교육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이들한테 조금이라도 생각하게끔, 제가 못했던 거를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게끔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요. 생각하면서 그리는 걸요.
윤수정 대표님은 고향이 서울이고, 학교 생활도 사회 생활도 서울에서 해왔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 직장을 따라 포천으로 오게 되어 어느덧 6년째 포천에서 살고 있는 포천인 윤수정 대표님에게 포천 문화 공간에 대한 견해도 듣고 싶어졌다. 외지인과 현지인 중간 사이에서 포착했을 예리한 의견이 있을 것만 같았다.
-6년차 포천인으로서 포천의 문화 공간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포천에서 문화예술 공간을 찾아 막상 찾아보려고 하면 많지가 않아요. 그런데 포천아트밸리라든가 산정호수, 허브 아일랜드 등에 가면 문화예술 공간들이 조성되어 있지만, 서울 연남동 같은 곳을 생각했을 때는 부족한 면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포천은 자연경관이 일단 우수하잖아요. 포천이 이 자연 경관이 우수해서 숨어서 작업을 하시는 작가들이 많아요. 은둔형 작가랄까? 그런 분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그 작가분들이 조금만 나서주시면 포천이 자연과 예술이 상생하는 효과가 엄청 클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 은둔형이 많으셔서 좀 나와주셨으면 좋겠어요. 포천이 정말 자연 경관은 어디다 내놔도 물도 맑고 산세도 좋고 유명하잖아요. 포천 자연을 관광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이 자연 경관과 함께예술이 접목돼서 뭔가 하나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도를 보면 포천이 길쭉하게 생겼어요. 포천의 아래쪽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도시형 공간이고 포천의 윗쪽은 자연 중심의 공간이고요. 이 두 공간이 분리된 감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두 공간을 서로 연결시켜줄 수 있는 것이 생기면 더욱 많은 시너지도 생길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서울의 1.25배에 달하는 드넓은 포천의 다소 분리된 지역적 특성을 극복할 수 있는 연결 포인트가 생기면 좋겠다는 의견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 같았다. 또한 윤수정 대표님은 요즘엔 아무래도 포천에 공장들이 많이 생겨서 다른 지역에 가서 저 포천에 산다고 말하면, 포천을 그저 공장 많은 곳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물론 공장들도 많지만 구석구석에 훌륭한 자연 경관들과 우리가 모르는 역사 문화 유산들이 많으니, 이 점이 더욱 많이 알려지면 포천 문화 공간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물듦공동체 대표로서도 화가로서도 이제 활동을 계속 쭉 이어나갈 건데요. 일단 저희 포천 지역 내 아이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활동해보고 싶어요. 포천 아이들이 자라서 포천에서 할 게 없고, 먹고 살 게 없어서 등 떠밀리듯 포천을 떠나지 않게, 포천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저와 물듦공동체가 할 수 있는 건 동화책이 됐든, 아이들이 보는 교육 교재가 됐든, 저희가 할 수 있는 문화 예술 교육 일들을 통해 포천 아이들이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겠지요. 사람은 과거의 사람들하고도 연결이 돼 있고, 내가 어떤 결과물을 내기 위해선 절대로 나 혼자 잘 나서는 되지 않으니까요. 모두 뭔가에 영향을 받았던 거예요. 엄마에게도 영향 받고 아빠에게도 영향 받고 친구에게도 영향 받고 선생님에게도 영향 받고, 자기 사는 지역에서도 영향을 받고, 옛날 저희 조상한테도 영향을 받고, 미래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받고, 이런 자연 경관에서도 영향을 받고....
절대 저 혼자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게 아니라 그게 모두 결집돼서 하나의 결과물로 나오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계속 된 윤수정 대표님의 말 속에서 문화 예술의 본질이 전달되는 것 같았다.
저도 지금 작업을 하지만 늘 그런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제도 아이들과 방과후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그림 그리면서,
"선생님은 그림 못 그려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냥 그릴 때 행복하면 된다 그러셨어요."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제가 늘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거든요. 너희들 못 그려도 돼. 그리는 순간 행복했으면 그게 너희들 최고 작품이야. 못 그리고 잘 그리고는 누가 평가하는 게 아니야. 그림은 못 그려도 괜찮아.너희들 커서 물론 화가가 될 사람도 있지만 화가가 안 될 사람도 있고, 그냥 이 순간이 재미있었으면 그게 가장 훌륭한 작품이야. 그 말들을 기억하고 어제 그 얘기를 3학년 아이가 말하는데, 이 아이들이 그냥 이대로 커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그건 바로 즐기는 것일 테다. 그리고 아이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모든 이에게 문화 예술이 필요한 이유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끝으로 이제 막 발족한 포천문화재단에 바라는 점은 어떤 게 있으세요?
저희처럼 자생적으로 이렇게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런 단체들을 많이 키워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이 구석구석에 있거든요. 기존의 단체들은 이미 벌써 이렇게 한 발을 뗐기 때문에 앞으로 나가는 게 더 수월하다고 봐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에게 관심을 좀 많이 가져주시고 직접 찾아다녀주시고, 다양한 문화 공간들도 활용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여부도 재단에서 발로 직접 나와서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원도 많이 해주시고요(웃음).그렇죠 지원이 지원이에요.
작가로서도 부탁을 드렸었는데, 저는 전시를 포천 미술협회 회원으로서 전시를 하는 거 외에는 포천에서 전시를 한 번도 못 해봤어요. 반월아트홀도 너무 훌륭하게 돼 있는데 그곳 전시 공간의 동률이 얼마 안 되는 것 같아요. 시에서 운영을 하시니까 저희처럼 괜히 다른 데서 개인전을 해야 하나, 찾아 헤매지 않게끔 포천에서 먼저 문을 활짝 열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화가로서 깊이 있는 예술에 대한 견해와 실력은 물론이고, 물듦공동체의 대표로서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에 진심으로 다하고 있는 윤수정 대표님과의 뜻 깊었던 인터뷰는 여기까지! 윤수정 대표님과 물듦공동체과 항상 연결되어 있는 포천문화재단 웹진 <하이픈>이 될 것을 다짐하며 이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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